유럽1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우리들의 '국제활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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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프랑스는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외국이다. 성인이 되어 전공으로 접한 언어이긴 하지만 지난 4년간 꾸준히 공부해온 프랑스어와 이를 통한 프랑스 친구들과의 교류, 그리고 몇 번의 프랑스 여행은 이번 워크캠프 국가를 선택하는 데에 망설임 없이 프랑스를 택하도록 해 주었다. 취업준비, 이력 쌓기 등 대학 4학년으로서 방학을 너무 헛되이 보내는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꼭 떠나고 싶었다. 이미 프랑스에 많은 지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고, 또한 한국에서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떠나는 동생들과도 우연히 프랑스에 같이 있게 되어 도착 후 큰 낯섦은 없었다. 프랑스 도착 후 이틀 뒤 새벽에 바로 워크캠프장소로 내려갔다. 너무 서두른 감이 있긴 하지만 놀다가 일하러 가는 것 보다는 일하다 노는 일정이 났다는 생각에서였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침낭, 안전화(운동화 앞 코에 철심이 달려있음), 불고기 양념 등 캠핑에만 쓰일 물품들의 부피가 커서 다 들고 여행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캠프 종료 이 후에도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을 방문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활동이 끝나고 캠핑 용품들은 다 기증하고 왔다.
3일 오전, 캠핑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Langon역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캠프리더를 만나 캠핑장으로 향했다. 랑공 자체도 참 작은 시골도시인데 우리가 가는 마을은 우리나라 ‘리(里)’단위와 비슷한 규모의 뷔도스(Budos)라는 곳이었다. 첫 날 오전 중 도착하라는 인포싯의 말과는 달리 나와 다른 프랑스인 참가자 동갑내기 여자아이 말고는 모두 오후에 도착하였다. 참가자 8명, 리더 2명, 총 10명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프랑스인이 6명, 이집트인이 1명, 알제리인이 1명, 한국인이 2명이었는데 2명의 아랍계 아이들 또한 프랑스로 이주해온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항상 프랑스어를 사용하였다.
텐트에서 자는 일은 초등학교 걸스카우트 때 이후로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낯설었다. 침낭 속 민 달팽이와 개미들의 환영은 나에게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마음을 편하게 먹고 나니 그 모든 것에 놀란 다는 것이 참 부질없이 느껴졌다. 마음을 비우고 생활하니 수돗물을 먹는 것도, 풀숲에 그냥 엎드려 잠이 드는 것도 소소한 일상이 되었다. 피부도 좋아지고 마음이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워크캠프 경험자들의 말로는 일보다 숙취에 힘들었다고들 하던데 나의 경우 참가자의 반이 청소년이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그리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정말 어렸을 때 캠핑 온 기분으로 건전하게 생활하였다.
우리가 하는 일은 뷔도스 성(Chateau de Budos)의 성곽 일부를 복구하는 작업으로 9개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뒤 성곽 꼭대기 부분을 다듬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평범한 여대생으로 살기까지 벽에 못박을 때 이 외에 망치를 들어본 적이 없던 내가 새로운 소질을 발견하게 된 순간이었다. 시멘트를 바르고 돌을 모양에 맞게 맞추고 없는 돌은 정으로 다듬어 내는 작업들은 육체적으로 매우 고단한 일이기도 했고 서툰 망치질에 손도 많이 다쳤었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심지어는 조각가의 꿈도 잠시 꿔보았다.
캠프 2일째~5일째까지는 하루에 아침 3시간 오후 2시간, 총9 5~6시간 정도의 작업을 하였으며 6일째 날부터는 각 종 성들과 도멘(와인을 제조하는 곳)을 돌며 와인을 맛보았다. 또한 가끔은 다른 마을의 축제에 가기도 하였다. 사실 워낙 시골이다 보니 축제라기 보다는 동네잔치에 가까웠고 우리나라처럼 노인 분들이 많았다. 그 외 활동으로는 카누타기, 우리나라의 오리배와 같은 페달룹, 호수 변 산책, 다른 캠프장 방문, 성 투어 등이 있었다.
참가자를 두 명씩 한 조로 한 뒤 매일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를 번갈아 가면서 했다. 첫째 주에 는 한국의 밤이라는 프로그램을 세우고 내가 맡은 요리시간에 불고기와 쌈, 강 된장, 김, 한국식 밥, 감자전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해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우리 캠프는 아랍권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존중하는 계획을 세웠었다. 요리에 대한 반응은 정말 좋았다!! 특히 고기와 야채, 기름을 넣고 달달 볶은 강된장과 쫀득쫀득한 감자전이 아이들 최대 관심사였다. 캠프를 가기 전엔 귀찮아서 요리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정말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마다 밥을 해주는 어머니의 맘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고단했다. 매일 사다리를 오르고 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바르는 작업들이 힘에 부쳤다. 하지만 즐거웠다. 그리고 뿌듯했다. 복원된 고성의 일부를 보면서 언젠가 내가 이 곳에 다시 왔을 때 내가 쌓은 벽돌을 찾으리라 생각했다. 내 생애 다시 언제 이렇게 텐트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볼 수 있을까? 유럽의 성곽에 올라 수리해 볼 수 있을까? 그랑크뤼 와인을 맛볼 수 있을까? 지금도 페이스 북을 통해 아이들과 연락하며 지낸다. 그리고 나는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프랑스에 갈 계획이다. 이 때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어나가 서로 추억을 도란도란 이야기 하고 싶다.
나의 스물 다섯 가장 특별했던 여름이여 안녕!